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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한] 聖公會 [영] Anglican Communion

  영국 교회를 위시해서 영국 교회의 대표주교인 캔터베리 대주교 관구(the See of Canterbury)와 통공관계에 있는 여러 교회를 성공회(Anglican Communion)이라고 부른다. 성공회라는 명칭은 원래 사도신경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는 구절을 한자화한 것으로 한국 · 일본 · 중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해 온 것이다. 캔터베리와의 통공관계는 전통적이고 가족적인 유대관계를 뜻하지만, 성공회에 속한 모든 교회가 캔터베리 대주교의 관할권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독립된 관구(Province)를 이루지 못한 몇 교회(한국 성공회와 같이)들이 관구외(外) 교구로서 캔터베리의 관할하에 있지만, 나머지 절대다수의 성공회 교회들은 각기 독립된 관구 또는 관구군(群)을 만들어서, 캔터베리를 정신적인 지도자 또는 영적인 대표자로 추대하는 외에는 전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운영해 나간다. 실상 주교가 관할하는 교구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성공회가 지켜 온 가톨릭 전통의 하나이다. 교구마다, 관구마다, 그리고 여러 교구 또는 여러 관구가 모여서 구성하는 각 나라의 성공회(미국 성공회, 중앙아프리카 성공회, 일본 성공회 등)마다 독립된 헌장과 교회법 체제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영국 교회의 헌법상의 관할자인 영국왕은 물론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근년에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서 성공회의 교세가 급격히 커져서, 교구가 새로이 만들어지거나 재구성되는 일이 잇달아 정확한 통계를 제시할 수 없지만, 세계 각 지역에 대략 500개의 교구(따라서 같은 수의 교구장 주교)가 있고, 이들은 20여 개의 관구와 관구군을 이루며, 각 관구 또는 관구군은 대주교 또는 수좌 주교(Archbishop, Presiding Bishop, Primate, Primus 등)가 관할한다. 모든 교구장 주교들이 1878년 이래, 10년마다 한 번씩 모여서 성직 · 교리 · 예전 · 선교 등 성공회 전체에 걸친 공동심사를 토의하는 램베트(Lambeth) 회의가 있고, 대주교나 수좌 주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수좌주교회의(Primates' Conference)가 있으며, 3년마다 한 번씩 모이는 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가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개개 교구나 관구에 대해서 어떤 구속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로마의 교황청과 같은 통제, 조정기관을 두기를 거부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서로 달리하는 수많은 교회가 성공회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해 오는데 공헌한 몇 가지 요인을 살펴보면, 거기에서 성공회의 한 교단으로서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성공회에는 니체아신경에서 외는 '하나이오,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의 한 부분이라는 자부가 있고, 다른 가톨릭 교회와 동떨어진 성공회 특유의 교리로서 '앵글리카니즘'이라고 고집할 어떤 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공회에는 서기 597년에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us)가 영국 교회를 시작했을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경험, 그리고 영국 교회가 모체가 되어서 세계 도처에 뿌려진 복음의 역사 속에 배태된 성공회적인 태도가 있고, 분위기가 있고, 기질이 있고, 강조점이 있다.

  우선, 성공회가 국교가 되어 있으면서도 로마 교회를 위시한 그리스도교의 거의 모든 교단 · 종파가 자유로이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영국의 정황이 보여주는 성공회의 다양성이 있다. '본질적인 것에 일치, 비본질적인 것에 다양성'이라는 전통을 이은 성공회는 밖으로는 다른 종파·종교와 더불어 우애와 관용으로 공존하고, 성공회 안에 여러 갈래의 신앙 태도와 입장(churchmanship)이 공존하고 있다. 이제 와서 고교회(高敎會, high Church), 저교회(低敎會, low Church)의 구분을 식별할 수는 없지만 가톨릭 전통을 강조하는 소위 '앵글로 가톨릭'(Anglo-Catholics)과 개신교적 성향이 짙은 복음주의파(Evangelicals)의 두 갈래가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다양성(또는 종합성)은 성공회의 한 교구 안에서, 한 관구 안에서, 한 나라의 성공회 안에서, 따라서 온 성공회 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일 것이다. 이것은 영국 교회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배타적인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반면, 서로 갈라진 형제들이 한 분 목자의 품안에서 일치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일치에의 의욕의 촉매제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성공회가 지난 19세기 이래 추구해 온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은 지속적이고 명예로운 것이었다. 동방 정교회와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돈독했고, 로마 교회 · 루터 교회 등과의 일치를 위한 대화가 끊긴 일이 없으며, 인도(印度)에서 이룩된 것 같이 다른 교파와 합쳐서 새로운 연합교회(United Ehurches)를 형성하는 데 언제나 앞장 서 온 것이 성공회이다. 일치를 위한 노력에서 성공회가 요구하는 네 개의 요건(소위 Lambeth-Chicago Quadrilateral, 1870년 제창)은 다음과 같다. ① 성경을 신앙의 기본으로 삼고, ② 사도신경과 니체아신경을 믿으며, ③ 주교, 사제, 부제의 성직제도를 고수하며, ④ 성사, 특히 세례와 성체성사를 지킨다는 것이다. 성공회가 기독교교회협의회(W.C.C.와 N.C.C.)의 창설과 활동에 처음부터 참여해 온 것도, 일치에의 의욕의 한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1880년 후반에 영국의 외방선교 단체의 사제가 잠시 부산(釜山)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한 일이 있지만, 대한 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11월에 코프(C. Corfe) 신부가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됨으로써 시작하였다. 한 사람의 한국인 교인도 생기기전에 주교가 선임되고, 그로써 한 교회가 시작한 대한성공회의 예는 흥미로운 일이다. 실상, 한국인에게 세례가 베풀어진 것은 주교 축성으로부터 7년 후인 1896년 6월 13일 강화에서였다. 코프 주교 취임 초 수년 동안의 선교활동은 다소 부진했던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때 코프 주교의 감독하에 이루어진 두 가지 뜻 깊은 사업이 있었다. 하나는 인천 · 서울 등지에 기도소를 겸한 병원이 세워져서 일반환자들과 고아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던 것이다. 이 사업에는 주교와 그를 보좌하던 소수의 사제들과 소수의 수녀들이 합세하였다. 또 하나는 후에 정동에 성 마리아와 성 니콜라 대성당을 지은 트롤로프(Trollope)신부가 스크랜튼(Scranton), 언더우드(Underwood) 등 개신교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성서 번역사업에 참여한 일이었다. 성공회의 의료 · 복지 · 교육사업은 일제통치, 세계대전, 6.25동란 등으로 큰 발전을 보지 못하였지만, 그 전통은 오늘날에도 살아있고, 성서 번역과 보급에 대한 전통적 관심은 성공회가 성서공회(聖書公會)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해 온 자취가 반증해 준다. 이 시기에 이룩한 또 하나의 기념할 만한 사업은 강화읍에 세운 성 베드로와 바울로 성당의 축성(1900년 11월 15일)이었다. 서구의 바실리카 양식과 불교사찰 양식을 대담하게 조합해서 세운 이 성당은 한편으로는 초기의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의 기틀을 보여 주는 증거물이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그리스도교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기념물이자 강화도의 명소이기도 하다.

  코프 주교는 영국 교회의 가톨릭 전통을 강조하는 선교단체인 U.S.P.G.와 한국 교회를 돕기 위해서 마련한 한국선교회(Korean Mission)의 지원을 받았으며, 약 20명의 사제를 거느렸다. U.S.P.G.와 한국에서 시무한 사제들의 성격으로 해서, 한국 성공회는 교회의 조직 · 신앙태도 · 예전 등에서 가톨릭적인 경향이 두드러진 교회로 성장해 왔다. 광복 후, 특히 6.25동란 이후 미국 · 호주 등 교회와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영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인 사제들로 대부분 대치되고, 한국인 주교가 축성되었으며,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로마 교회를 위시한 세계 교회와 선교의 양상이 크게 변천함에 따라서 이와 같은 - 때로 배타적이기까지 했던 - 경향은 보다 다양하고 보다 현실적인 교회생활과 선교활동으로 변모해 왔다. 그러나 주교제, 성사생활, 공도문에 의한 예전 등 기본적 전통은 그대로 지켜져 왔다.

  1900년부터 1945년까지의 약 반 세기 동안, 성공회는 정착과 발전의 노력을 계속해서 1940년 이전에 영국이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제의 수와 맞먹는 20여명의 한국인 사제가 나왔다. 1910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서울 · 강화 · 수원(水原) · 천안(天安) · 진천(鎭川) 등지에 성당이 서고, 황해도 백천[白川] · 연백(延白)에까지 교세가 확장했고, 교우가 5,000명을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인천에는 성 미카엘 신학원이 설립되고, 1926년에는 숙원이었던 정동 대성당의 준공을 보았다. 1930년 일제하의 어려운 조건하에서 선교활동을 추진한 트롤로프 주교가 객사하여 대성당 지하성당에 묻힌 후, 그 뒤를 이은 쿠퍼(Cecil Cooper) 주교 때에는 북한 지역에서의 사업이 큰 활기를 띠었으며,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영국 선교사들이 강제로 한국을 떠났을 때 남한의 성공회 교세보다 북한지역에서의 교세가 더 컸을 정도였다.

  선교사들이 비우고 간 성공회는 종전 때까지 일본인 주교의 관할 하에서 최소한의 성사생활을 계속했을 뿐, 선교 · 교육 · 사회봉사는 붕괴와 침체를 면치 못하였다. 종전 후 쿠퍼 주교가 다시 돌아와서 교회 재건에 몰두하였으나, 그가 사랑하던 북한지역의 교회는 찾아볼 길이 없게 되었고, 1950년에 6.25동란이 일어나자 쿠퍼 주교는 수 명의 성공회 사제와 수녀들과 함께 북괴군에 잡혀죽음의 행진을 강요당하였다. 쿠퍼 주교는 살아서 돌아왔지만 그와 동행한 한국인 사제와 영국인 수녀, 각 한 명은 11월 6일과 20일에 각각 순교하였다. 적군에 연행된 한국인 사제들 중 두 명은 그 후 서울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성공회는 1965년에 두 개의 교구로 분할되어 최초로 한국인 사제를 주교로 축성하여, 서울교구장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그 후 1973년에는 대전(大田)교구를 대전과 부산(釜山) 두 교구로 나누어, 그 두 교구의 교구장에 다시 한국인 주교가 착좌해서 그로부터 한국 성공회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교회로 새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최후의 선교사 서울 주교 데일리(John Daly)의 업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가 서울교구장으로 부임해서, 그 자리를 이천환(李天煥) 주교에게 넘기기까지의 10년 동안(1955∼1965년) 한국 성공회는 몇 가지 뜻깊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기독교 연합사업(N.C.C.)에의 참여, 지역사회 개발과 기아해방운동의 전개, 평신도교육과 자급사제직의 시도, 산업선교의 도입, 성 미카엘 신학원의 재개 · 확충 등이 그것이다. 1965년 이후의 성공회의 역사는 이와 같은 기본적인 선교정책을 변천하는 한국과 세계의 상황에 맞추어서 전개한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교회행정조직이 정비되어 각 교구장 산하에 교무국이 설치되고, 1983년 1월부터는 세 교구를 망라한 전국의회(National Synod)의 산하에 교무원이 설치되어, 세 교구의 균형 있고 효율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기구를 갖추게 되었다. 성공회의 최소단위는 전도구이며, 전도구에는 영성체자들이 선출하는 교회위원으로 구성되는 교회위원회(Parochial Church Council)가 있고, 각 전도구의 사제와 교회위원회의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교구의회, 그리고 세 교구의 교구장과 교구의회가 선출하는 사제와 평신도들이 구성하는 전국의회가 있다. 교구의회와 전국의회는 대한성공회의 헌장이 규정하는 바에 따른 교회의 최고 입법기관이다. 이와 같은 의회제도는 세계의 모든 성공회의 공통적 관습이며, 의회에서의 의결에는 주교 · 사제 · 평신도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고 어느 누구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성공회의 세 교구는 각각 관구의 교구로서 동남아성공회 이사회(The Council of the Church in East Asia)에 속해 있으면서 캔터베리 대주교의 관할을 받는다. 이것은 한 언어와 한 문화를 향유하는 한 민족의 교회로서는 부자연한 상황이다. 따라서, 교세확장과 선교활동을 서둘러 독립된 교회로 발전할 수 있는 관구 설립이 시급히 요망되고 있다. 대한성공회는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천신신학교(성 미카엘 신학원의 후신)를, 정박아 교육기관으로서 성 베드로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선교사업을 돕고 독자적인 사회복지사업을 추구하는 성가수녀회가 있다. (金鎭萬)

  [참고문헌] W. Dixon, History of the Church of England, vol. 6, 1895 / Gasquet and Bishop, Edward Ⅵ and the Book of Common Prayer, 1890 / R.T. Davidson, Character and Call of the Church of England, 1912 / W.H. Carnegie, Anglicanism, 1925 / J. Marchant, The Future of the Church of England,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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